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어 위키백과 (문단 편집) ===== 부여계 국가(백제, 고구려, 발해)에 대한 왜곡 ===== 부여계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 발해를 한민족과 아무 상관 없는 [[퉁구스]]계 국가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예 식민사관 중 하나인 만선사관을 재평가하는 기술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당시 일본 제국은 고구려와 백제를 퉁구스계이자 북방계 이민족, 신라를 남방계 삼한족이라고 잘못 구분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한반도 영토는 만주족 왕조이며 현재의 열등한 한민족을 지배한 국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부여계의 명맥이 끊어진 것이 되는데 실제 삼한족인 신라가 부여계 예맥족의 국가를 멸망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문제는 고구려인 스스로도 자신을 삼한인이라고 말하고, 중국과 일본 사서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한이라 통칭하는 등, 삼한이라는 단어는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고구려인이 세운 묘비에서도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한이 고구려를 포함한다는 주장을 민족주의자의 소설로 취급하는 의견을 당당히 써놓았다. 그리고 오로지 신라만이 현재의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고구려가 위치했던 한사군도 한민족을 지배했던 것이 아니라 퉁구스인들을 지배했던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신라는 한사군에 속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한사군은 한민족을 지배했던 중국의 식민지"라는 것은 적극 인정한다. 역시 앞뒤가 안 맞는 궤변과 모순이다. 참고로 고구려를 배반하고 당의 고관이 된 연남생이 사망하자, 당나라 정부가 쓴 졸기에 남생은 '변한' 출신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렇듯 맥족이 주체가 되어 예족 한족을 정복해 융화된것이 한민족의 정체성인데, 단지 한국을 까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대사 부분을 환단고기마냥 편집하는 유치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이를 외국사와 비교할 시, 영국으로 치면 앵글로와 섹슨과 노르만을 분리시키고 셋을 지배 피지배 관계로 엮어보겠다는 수준의 추함이며 일본으로 치면 죠몬인들이 다수였던 동일본 지역이 과거 에조(오랑캐)로 취급당한 걸 가지고 동일본을 러시아 역사로 종속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 이런 오랑캐 취급은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한 이후의 일이다. 때문에 고구려를 퉁구스계 만주족 역사라는 의견을 엄청나게 써놨다. 사실 동북공정 또한 일본 제국과 관련이 있는데,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을 발생시켜 중국과 만주를 분열시키려는 모습을 보였고, 한국을 만주세력에 종속된 열등 민족(만선사관)이라 비하하기 위해 만주에 위치했던 국가를 한국과도 분리시켰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러한 일본제국의 영향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여진족, 만주족은 고구려나 발해를 계승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이는 여진족, 만주족의 기록물이 증명한다. 청나라 시기 작성된 명사에서는 만주족의 민족주의 고취를 위해 써놓은 만주원류고에서도 자신들의 원류에 발해, 신라를 끼어놓았을 지언정 고구려는 자신과 다른 민족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고려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폄훼하면서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은 발해와 여진족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고려를 신라로 보았다고 했다는 근거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금사에도 말갈이 고(구)려에게 [[속국|신속]]되었다고 하지, 말갈이 고구려를 세웠다고는 안 한다. 이외에도 고려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보고 '''과거 고구려의 속민''' 운운하기도 했다. 반면, [[고구려#s-12.2.2.1|한민족은 끊임없이 스스로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몽골 등에 고구려 계승의식을 보였으며 이들은 고구려가 한민족의 역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해가 만주족으로 발전되었다는 거짓말도 한다. 도리어 발해인들은 만주족이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던 금나라의 여진족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금나라 초기에 소멸하게 되었다. 애초에 만주족의 전신인 [[여진족]]부터가 자신들을 발해인과 구분했다. 부여계 국가들은 퉁구스계 민족들과 언어도 다르고 자신과 다른 민족으로 구분했다. 부여는 읍루인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했고, 고구려는 말갈을 공격해서 속민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부여어족을 퉁구스로 구분한다. 만주어의 경우, '''다른 퉁구스어족과는 달리''' 몇몇 부분에서 고구려어의 흔적이 보인다고는 한다. 다만 이 고구려어 흔적들마저도 '한국어와 연관되는 부분'으로써 연구된다. 물론 고구려의 인구수의 상당수가 말갈인데 말갈이 정말 고구려의 상당수인지는 불명이다. 30% 이하의 소수민족급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마저도 무력으로 복속시키고 동화정책을 쓴 것. 이 말갈족들이 여진족의 전신이라 보긴 한다. 그러니 여진족들의 주류 조상들은 말갈족들 중에서도 고구려의 영향력이 말갈 부족 중 적은 흑수말갈이다. 같은 말갈족이라고 해도 발해는 고구려에게 동화되어 고구려 정체성을 가진 말갈족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이고, 여진족은 고구려 정체성이 옅거나 없는 말갈족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라 이질성이 존재했다. 이 때문에 금나라에서는 발해인들과 갈등이 잦았다. 이 흑수말갈은 발해 때가 되어야 무력으로 발해의 속민이 되었다가 9세기 말 쯤 독립했다. 즉 부여, 고구려는 숙신-말갈-여진-만주로 대표되는 퉁구스족을 타 민족이라고 여기고 무력을 통해 복속시켰다.(지배의 정도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이 사실을 왜곡되게 해석해서 고구려를 만주족이 세운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은 일본제국을 한국인이 세운 제국이자 한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한, 한중 고구려사 귀속논쟁(동북공정)에 관해 완벽하게 중국측 편을 들고 있다. 일본어 위키피디아는 문서 내용 태반의 각주가 중국어 위키피디아로 되어있으며, 귀속논쟁 관련 전문가의 의견은 중국인 학자 의견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일본인 학자의 의견으로 되어 있는데 물론 주로 일제시절의 사관을 답습하는 학자들의 20세기 자료를 근거로 한다. 한국인 학자의 의견은 고구려사를 제 3의 만주사로 보자는 소장파 학자의 의견 단 하나만 담고 있다. 동북공정 자체를 현대 중공의 영토확장 야욕과 내치를 위한 정치판단의 결과라고 보는 영어권 위키피디아와는 달리, 혐한 넷우익들에 먹힌 일본 위키는 혐한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중국공산당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